프랜시스 골턴 경은 영국의 인류학자이다. 이래스머스 다윈의 외손자이고 찰스 다윈은 그의 배다른 외사촌 형이었다.
골턴은 1822년 2월 16일 워위크서 버밍엄 스파크 브루크에서 새뮤얼 고런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시인이자 자연철학자인 이래즈머스 다윈이며, 찰스 다윈은 그의 사촌이다. 버밍엄에 위치한 에드워드 4세 그래머 스쿨을 다닌 후 골턴은 버밍엄에 위치한 에드워드 4세 그래머 스쿨을 다닌 후 골턴은 버밍엄 병원과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의학을 공부하였다. 그 후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트리니지 칼리지에서 학위를 받았고 이때부터 방향을 전환하였다.
골턴은 인류학, 특히 유전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1865년 골턴은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는 부적격자의 탄생을 확인과 적격자의 탄생을 증진을 위해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1884년에도 이를 재주장하였으며, 우생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1904년 골턴은 런던 대학교에서 물리적, 정신적으로 후대의 종족의 질 향상을 위한 사회적 통제를 위한 연구 하는 이름하에 우생학 연구를 진행하도록 지원하였다.
우생학은 개량을 목적으로 인간의 선발육종을 찬성하는 생각이다. 인류를 유전학적으로 개량한 것을 목적으로 하여 여러 가지 조건과 인자 등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1883년 영국의 프랜시스 골턴이 처음으로 창시했는데, 가를 꾀하고 열악한 유전자를 가진 인구의 증가를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서구 역사에서 우생학적 담론의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리스 시대에서 시작된다. 플라톤은 만성적 허악과 방종에 의해 질병에 걸린 인간들은 의학적 치료의 대상이 아니며, 도덕적 타락은 추방이나 처형의 이유가 되고, 우수한 자손의 번식을 통한 도시 국가의 이상 실현을 위해 우수한 계급의 현명한 결혼을 주장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시민계급 중심으로 이상적 공동체를 설계해야 하며, 하층 계급의 다산으로 인한 과잉 연구는 빈곤이나 범죄, 혁명의 중심지로 자라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하층계급의 출산율을 엄격히 제한되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근대적 의미의 유전적 구성에 근거를 둔 인간 개선이라는 목표를 사회적으로 구현한 추동력은 영국의 골턴에게서 나왔다.
골턴은 다윈의 진화론을 근거로 인간의 재능과 특질이 유전된다고 믿었고, 이를 통계학적 방법을 이용해 정당화함으로써 인간개선을 도모하려 했다. 콜탄은 우생학을 창안하기 오래전부터 유전적 특질, 특히 지적 능력의 차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는 골턴 자신의 가계에 대한 관심, 외조부인 이래즈머스 다윈과 사촌인 다윈의 영향을 기안한다. 이들의 영향을 어려서부터 직간접적으로 받았던 골턴은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 양육보다 인간의 형질을 규정하는 우선적 요인이라 생각했고 이는 유전성의 강조를 내세우며 인간 개선을 도모하는 장난 태생에 대한 과학, 즉 우생학으로 발전했다.
우생학에 대한 골턴의 생각은 19세기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심지어 서양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귀족과 같은 사람들은 업설 등을 통하여 우생학과 비슷한 사상을 가지고 있어서 천한 존재들에 대한 학살과 기타 약한 행위를 귀족 세력 내부에서 정당화하였다. 고대 그리스 시대, 플라톤은 자신이 책에서 우생학적인 주장을 한 바 있다. 그는 가장 훌륭한 남자는 될 수 있는 대로 가장 훌륭한 여자와 동침시켜야 하며 이렇게 태어난 아이는 양육되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는 내다 버려야 하며 고칠 수 없는 정신병에 걸린 자와 천성적으로 부패한 자는 죽여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달라진 가문들도 있으나 로마 시대에서도 스스로 우월성을 주장하며 평민들과 섞이길 거부한 파트리키 가문들이 있었으며 귀족주의자들은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게 전화 그리스인들이나 로마인들을 학살하는 것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인 캄파넬라 또한 《태양의 도시》에서 "우월한 젊은이만이 자손을 남길 수 있도록 통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오랜 전통을 가진 우생학적 담론들은 19세기 다 되어서 영국인 골턴의 정교한 유전적, 통계적 방법에 의해 체계화되어갔다. 그는 광범위한 가계조사 자료를 통계적으로 정리하여 인간의 지적, 도덕적 능력이 환경의 영향과 관계없이 유전적으로 결정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를 그의 사촌인 다윈의 진화 이론과 결합해 유전자에 의해 형질이 결정된 개개인들 사이의 경쟁과 선택을 통해 인간의 진화가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선택은 자연선택도 있었지만 매우 느린 과정으로 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인위적인 선택을 수행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인위적 선택은 지적, 도덕적으로 우월한 사람이 더 많은 자손을 남기도록 장려되는 것과 열등한 사람은 되도록 자손을 남기지 못하도록 억제되는 것이었다. 그는 이러한 것을 실현하게 할 수 있는 방법과 그 과학적 기초를 '우생학'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골턴의 주장은 기독교적이었던 당시 영국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북유럽 인종을 찬양한 위대한 인종의 소멸 같은 주장들은 히틀러와 같은 지지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나의 투쟁에서도 비슷한 내용들을 찾을 수 있다.그 후, 20세기의 전반기 사이의 기간에는 우생학이 탄생하고 크게 성장하여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힘을 발휘하였지만 결국은 쇠퇴하게 되었다.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일본 등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각종 우생학 단체가 만들어졌으며, 전문 학술지까지 발간되었다. 특히 미국, 독일, 덴마크, 스웨덴 등에서는 우생학이 법률로 제정되어 수많은 사람이 강제 불임 수술과 거세를 당했으며 심지어 학살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우생학은 나치의 대학살로 인해 세계 2차 대전 이후 대부분의 나라에서 쇠퇴하였다. '우생학'이라는 단어 자체가 나치의 대학살을 연상하게 하는 나쁜 함의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강제적인 불임 시술과 거세, 학살은 1945년에서 1950년을 기점으로 대부분 중단되었으며, 각국의 우생학회는 이름을 바꾸고 우생학 학술지도 폐간하거나 유전학 학술지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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